최신 사랑의 메시지

증언 영상평생 용서할 수 없었던 사람을 용서하게 된 이유

운영진ㅤ
2026-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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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미 예수님! 찬미 성모님!
제가 2004년부터 나주 성지에 순례 다니면서 주님과 성모님께 받은 개종과 용서의 은총을 나누고자 나왔습니다. 저는 개신교 신자였다가 나주에 발현하신 예수님과 성모님의 메시지 말씀을 읽던 중에 눈물로 회개하면서 평생 용서하지 못했던 사람을 용서하게 되었고, 성체 안에 살아계신 예수님과 세상 자녀들의 구원을 위해서 기도하시며 주님께 저희를 인도하시는 성모님의 사랑과 현존을 깨닫게 되어 가톨릭교회로 개종했습니다.
 
2005년 9월 8일에 그 당시 교황님이셨던 베네딕토 16세 성하께 제가 나주 성모님을 통하여 받은 은총이랑 저의 삶의 변화가 어떻게 생겼는지 편지로 써서 교황청으로 보냈는데 한 달 후에 답장이 왔어요.

제가 왜 이 편지를 보냈냐면 교회의 가장 큰 목자이신 교황님이야말로 나주 성지가 조금이라도 뭔가 오류가 있고, 잘못됐다면 아예 순례를 금하시거나 또는 “인준이 날 때까지 순례 다니는 걸 좀 보류해라.” 그렇게 저한테 분명히 말씀을 해 주실 거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답장이 왔어요.
 
“친애하는 릴리아나, 교황 성하께서는 당신의 편지를 받으셨으며 당신께 감사드려 달라고 저에게 부탁하셨습니다. 성하께서는 기도 중에 당신을 기억하실 것이며 하느님의 풍부한 축복이 당신께 내리시길 기도드릴 것입니다. 가브리엘 카치아 주교 드림.”
 
이분이 교황님께 가는 서신에 대한 답장을 하시는 분이라고 들었어요. 그래서 저는 누가 뭐래도 흔들림 없이 계속 순례를 다니고 있어요. 그리고 이게 그 서신입니다.
 
그리고 용서의 은총에 대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어릴 적 저희 가족은 아빠 일 관계로 사우디아라비아의 수도인 리야드에 가서 살게 됐었고, 그곳에서 외국인 학교를 다니다가 귀국하면서 한국 초등학교에 전학했는데 제가 2학년 되던 해에 아직 학교에 들어가지 않은 제 여동생만 데리고 부모님께서 다시 사우디로 나가셨어요.
 
저랑 두 살 위인 오빠는 친할머니, 친할아버지랑 같이 살게 됐습니다. 그런데 아빠, 엄마 계실 때는 그렇게 자상하셨던 할머니께서 부모님이 출국하기 위해 공항으로 떠난 그 순간부터 갑자기 돌변하셔서 저를 구박하기 시작하셨어요. 그리고 함께 남겨진 오빠도 합세를 해서 그때부터 저를 괴롭히기 시작했어요. 제가 가만히 있어도, 뭘 해도, 밥을 먹어도, 잠을 자도 일거수일투족 아니, 그냥 제 존재 자체가 할머니랑 오빠한테는 눈엣가시였던 것 같아요.

오빠가 먼저 원인 제공을 해서 저랑 다투게 돼도 항상 모든 것은 결국 다 제 잘못으로 돌아왔고, 할머니는 저만 보면 그렇게 징그럽다고 하셨고, 제 트레이드 마크는 늘 “못돼 처먹은 년”이었습니다. 오빠는 제가 실수를 하거나 잘못한 게 있으면 “할머니, 얘 좀 보래요.” 이렇게 일러바치는 데 1초도 안 걸려. 그러면 이제 할머니는 눈썹을 확 휘날리며 나타나셔서 저한테 온갖 욕설을 퍼부으며 야단을 치시곤 하셨어요.

오빠는 늘 하나밖에 없는 장손, 하나밖에 없는 손자라는 이유로 할머니로부터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았습니다. 시간이 이제 지나다 보니까 저도 모르게 ‘못돼 처먹은 년의 진수를 보여주자.’ 반항심에 하루가 멀다하고 오빠랑 독하게 싸웠어요. 어차피 가만히 있어도 모든 건 다 제 잘못이니깐요. 그러니까 오빠가 저 때문에 속상해서 막 울면서 할머니한테 가서 일러요. 그러면 할머니가 나타나서 저를 막 야단을 치시곤 했지만, 야단을 맞으면서도 그 두 사람 속을 제대로 뒤집어 놨다는 사실에 굉장히 뿌듯하기도 했어요. 억울해도 어디 호소할 데도 없고 그 이후로도 저는 오랫동안 식구들 사이에서 늘 비난과 조롱의 대상이었습니다. 억울해서 오빠한테 대들다가 뺨도 여러 번 맞았고요.
 
방학 때 잠깐 부모님이 귀국하셨을 때 “할머니가 맨날 나만 미워한다.”고 말씀드려봤지만 “너를 사랑해서 잘되라고 야단치는 거를 그렇게 삐뚤어진 생각으로 받아들이면 안 된다.”며 오히려 저만 혼나곤 했습니다. ‘결국 또 내 탓이다. 다 내 잘못이다. 아무도 귀를 기울여 주지 않는구나.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았을걸.’ 그런 생각도 수없이 했고요. 매일 밤마다 눈 감고 잠이 들면 그다음 날 아침에 안 깨길 바랐어요. 부모님한테조차 외면당한 저의 억울함.

그런데 저는 그 당시에 이렇게 상상하곤 했어요. 이 모든 것을 낱낱이 지켜보고 있는 누군가 있다면 다른 사람은 몰라도 그 사람만은 나를 이해해 줄 거라고. 보이지는 않지만. 네, 그렇습니다. 예수님과 성모님께서 보이지 않는 현존으로 다 지켜보고 계셨고, 함께 아파하고 계셨다는 것을 나주 성지에 순례 다니면서 깨닫게 됐습니다.
 
그래서 부족한 저를 품에 안아주시고 제 깊은 상처를 치유하여 주셔서 평생 용서를 하려야 할 수 없었던, 지옥도 당신한테는 아깝다고 제가 그렇게 증오했던 할머니를 용서할 수 있게 해 주신 거였어요. 그리고 다 제가 있음으로 인해서 할머니랑 오빠가 저를 미워한 거니까 또한 제 탓이었음을 깨닫게 해 주셨어요.
 
할머니는 불교 신자였는데 고모의 설득으로 92년도에 개종은 하셨지만, 진정으로 하느님을 섬기진 못하셨고 한 8년간 치매를 앓다가 돌아가셨어요. 할머니도 저처럼 나주 성모님을 알게 되셨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시간이 이제 지나서 제가 어느 날 생각을 해 보니까 율리아 엄마께서도 저희 각자가 모두 “주님께서 예비한 삶”이라고 하셨듯이 이 모든 게 먼 훗날 예수님과 성모님께서 저를 나주 성지로 불러주실 것을 미리 알고 있던 마귀들이 저를 엄청 미워해서 가까운 가족을 통해 그렇게 악랄하게 저를 괴롭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어요.
 
그리고 2011년 은총의 사순절 어느 날, 밤 11시쯤에 뜬금없이 오빠한테 한 통의 문자가 왔어요. “부모님 사우디 가시고 둘만 남았을 때 너무 때리고 보호해 주지 못해서 너무 미안해.” 30년도 더 지난 일에 대해서 처음으로 저한테 미안하다고 문자를 보냈는데, 저는 오빠한테 괜찮다고 마귀가 나를 엄청 미워해서 가까운 가족 통해서 그런 거라고 나는 결코 혼자가 아니었다고 예수님과 성모님께서 다 지켜보고 아파하셨다고.
 
그때 느꼈던 억울함, 지독한 외로움, 그리고 모멸감을 통해 세상 자녀 구원을 위해서 나주에 오셨지만, 외면당하시고 박해받으시는 예수님 마음이 어떠실지 아주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아서 오히려 감사하다고. 그러니 더 이상 그 일로 나한테 미안해하지 말라고 답장을 보냈습니다.

율리아 엄마의 고통과 희생을 통해서 상처투성이였던 저를 불러주시고 또 치유하여 주시고 또 회개와 용서의 은총을 내려주시고 개신교 신자인 오빠한테도 회개의 은총을 허락하여 주셔서 저희 둘을 진정으로 화해시켜 주신 주님과 성모님께 온 마음을 다하여 감사드립니다. 아멘. 그리고 늘 은총의 통로가 되어 주시는 율리아 엄마, 너무 감사드려요. 무지무지 사랑해요. 알라뿅.

2026년 6월 6일
전 릴리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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